역사, 체험학습그림으로 배우는 역사-르네상스와 비너스 (2019년 4월호)

관리자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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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 비너스의 그림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왜 이 작품을 명작이라고 하고 미술사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그림으로 인정받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비너스는 옷을 입으면 안 되나? 새롭게 탄생했기 때문에 엄마 배 속에서 나온 모습처럼옷을 입지 않은 걸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그림을 보니 작가도 많은 고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티첼리는 15~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주요 교회와 예배당에 종교화를 그리던 화가였다. 당시에는 그림의 소재가 모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어서 성스럽고 고고하게 표현해야 하는 원칙이 있었다. 그런데 ‘비너스의 탄생’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는 작품이다. 성경 인물도 아니고 고결한 대상의 표현이 아니라 방종한 ‘누드화’여서 불경한 그림이라고 비난 받을 수도 있었다. 보티첼리는 대단한 모험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보티첼리가 작품 활동을 하던 때는 변화의 시대였다. 기독교가 근간이던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옮겨가는 과도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에 나오는 비너스가 그림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이전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를 그림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르네상스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학문과 예술을 부흥시키고자 하는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의 근원지는 로마문화의 전통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피렌체다. 1453년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를 옹호하던 유럽 나라들이 이슬람에 패배했다. 마지막 보루이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동방의 많은 학자들이 중요한 서적과 필사본, 그리고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을 지니고 이탈리아로 피신했다. 피렌체는 이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르네상스의 선구자가 되어 전 유럽에 그 정신을 전파하였다.  선두에 ‘비너스의 탄생’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활약은 르네상스의 바람을 더 적극적으로 휘몰아치게 했고 이후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갈릴레이의 지동설과 쿠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이어졌다.

 보티첼리는 19세기 이전까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당시 유명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대단한 천재로 부각되며 그의 빛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보티첼리의 천재적 모습이 엿보인다. 이전에 없던 반짝이는 새로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없었다면 천재로 평가받았을까? 그렇다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인가, 시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새로운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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