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 정보명문가정의 독서교육-허균 가(家) (2019년 2월호)

관리자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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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은 외교 업무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1594년 문과에 급제한 허균에게 가장 자주 부여된 직무는 명나라 사신 접대였다. 허균은 임진왜란 와중에 조선에 파병된 중국 명나라 장군들을 접대하는 일도 맡았다. 허균은 28살에 외교 업무를 다루는 승문원에서 근무했다. 허균이 당시 그 누구보다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 해박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는 고금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짧은 시간 동안 시를 지어 주고받기도 해야 하는데, 허균이야말로 그 적임자였다. 허균이 외교관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와 문학책을 섭렵하였기 때문이다. 허균이 살던 시대는 중국 사신을 접대해야 했으므로 중국의 역사와 문학에 정통해야 외교관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요즘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의 역사와 문학에 정통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외교관을 꿈꾼다면 셰익스피어와 괴테등이 쓴 문학작품과 로마제국쇠망사와 같은 서구 역사서를 즐겨 읽을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에 집을 도서관으로 만드는 ‘장서가’의 열풍에 불을 지핀 이가 허균이다. 그는 29살 무렵 중국 연경에 갔을 때 무려 4천여 권의 책을 사서 한양까지 싣고 왔다.

 “책이 상자에 가득해 짐 보따리는 넉넉하지만 서리와 이슬이 옷을 적셔 나그네길이 어렵기만 하네.”

 허균은 4천 권의 책을 싣고 오면서 이런 시를 지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미리 구입하고 싶은 목록을빼곡히 작성해 연경의 책방을 순회하면서 구입했다고 한다. 허균은 책에 대한 욕심이 컸다. 이를 보고 명나라의 진계유는 “조선 사람들은 책을 매우 좋아해서 책 값을 생각하지 않고 다량 수집해 갔으며, 이 때문에 조선에는 이서 즉 흔하지 않은 귀한 책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라고 쓴 바 있다.

 허균은 책을 수집하고 소장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수집한 책들을 읽으면서 책을 통해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사상과 만났다. 새로운 세상을 먼저 구경하려면 서점에 가라는 말이 있다. 꼭 책을 사지 않아도 그냥 책방에 들러 이런저런 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책 제목을 유심히 보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고, 새로운 책을 읽어야 새로운 생각과 관점을 가질 수 있다. 허균은 특히 자유분방한 독서로 당시 사서삼경 등 유교의 고전에 한정했던 독서의 범위를 뛰어넘고 독특한 글쓰기로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드러냈다. 임진왜란을 맞아 피난 와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책벌레였던 허균은 과격하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며 시대와 불화를 겪다 결국 불우하게 세상을 마쳤다. 잘 알려진 대로 《홍길동전》이라는 최초의 한글소설을 썼는데, 소설처럼 적서차별이 없는 ‘평등사회’를 꿈꾸다 삶을 마감해야 했다.

 허균은 자신의 서재이름을 ‘사우재’라고 했는데, 이는 ‘네 명의 벗이 노니는 서재’라는 뜻이다. 네 명이란 허균 자신과도연명, 이백 그리고 소동파라고 한다. 허균이 이 세 사람을 벗으로 삼은 것은 단지 시나 문장을 잘해서가 아니다. 이들이 모두 속세를 벗어나 대자연 속에서 세속적 욕망이나 명예를 탐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리면서 자신만의 시를 썼기 때문이다.

 허균은 이 세 사람의 초상화를 방에 걸어두고 그들의 삶과 시의 세계를 닮고 싶어 했다. 단지 모방하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정신세계를 닮고자 했다. 조선을 뒤흔든 ‘천재 악동’ 허균을 만든 것은 그의 선천적 재능이 아니라 바로 어릴 적 아버지와 형들, 누이와 함께 시작한 책과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