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우리시골 마을 독서교실에서 피어난 동화 같은 성장 이야기 (2020년 7월호)

강현철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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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리가 처음 고봉선 실장을 찾은 때는 2년 전이다. 어머니 김경미 씨는 그 계기에 대해 ‘규리의 자신감을 길러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수줍어서인지,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망설이는 모습이 종종 있었어요. 대체로 자기표현을 속 시원하게 잘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었죠. ‘자기표현에 좀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을 가졌으면’하고 바라던 차에 지인이 한우리 수업을 소개해 주었어요. 큰 변화를 기대했던 건 아

니고, 다양한 책도 접하게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교실을 찾았죠.”

 하지만 규리의 마음은 마냥 가벼울 수 없었다. 낯선 환경, 새로운 선생님과 마주한다는 긴장 때문이었다. 다행히 여느 학원과 사뭇 다른 풍

경이 규리의 긴장을 조금 누그러뜨려 주었다. 탁 트인 독서교실 정원에서 한참 꽃과 나무를 감상하고 있을 때, 규리를 향해 예상치 못했던 존

재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다름 아닌 고 실장의 반려견 ‘콩’이었다.

 “짧은 꼬리를 살랑살랑, 두 앞발은 겅중겅중하며 다가오는데, 마치 반갑다며 악수를 건네는 것 같았어요. 그런 콩이에게 고마워서 독서교실

에 다녀보겠다는 용기를 냈어요.”


 고봉선 실장은 첫 상담에서 규리를 세심하게 지켜본 후, 자신감 부족이 두려움 때문이라 판단했다. ‘잠재력이나 잘 하고 싶다는 의욕이 컸

고, 그만큼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던 것 같다’는 설명이다.

 고 실장은 규리와 정서적 유대감을 쌓아가는 한편,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기회를 자주 마련했다. 이때 독서교실을 둘러

싼 자연 환경을 십분 활용했다.

 “함께 풍경이나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어요. 한 번은 한라산 중턱의 뭉게구름을 가리키며 ‘누가 백록담에서 목욕을 하나보

다’라고 넌지시 제 감상을 건넸어요. 구름이 마치 비누 거품 같았거든요. 그랬더니 규리가 ‘달에서 떡방아 찧던 토끼가 일을 마치고 목욕하

러 내려온 게 아닐까요?’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수줍은 듯 했지만, 흥분과 즐거움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죠. 규리의 상상력과 용기

가 기특해서, 이 대화를 시로 만들어 문예지에 기고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게 규리의 작품은 ‘뭉게구름’이라는 제목을 달고 문예지 <소년문학>의 한 켠을 멋지게 장식했다.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규리의 이야기

가 고 실장의 칭찬과 격려 덕분에 세상 밖으로 펼쳐진 것이다.

 규리는 ‘말을 꺼내는 순간에는 영 자신이 없었는데, 선생님의 칭찬에 용기가 났다’며, ‘내 이야기가 잡지에 실린다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도 모두 멋진 경험이었다’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규리의 자신감이 움트기 시작하자, 고 실장은 규리와 하던 일대일 수업을 그룹 수업으로 바꿔 진행하기로 했다. 친구들과 의견이나 자극을 

주고받는 과정이, 규리의 또래 관계 자신감과 표현력, 논리력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낯선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것이 어색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한 달만 해보고 아니면 그만두자’라는 고 실장의 설득에 규리의 마음이 

움직였다.

 고 실장은 우선 함께 수업할 친구들에게 규리의 심리적 부담을 충분히 이해시킨 후, 따뜻한 격려와 환영을 부탁해 두었다. 그리고 수업 중

에 ‘그건 아니야’와 같은 부정적 피드백은 가급적 하지 않았다. 대신 고 실장도 발표와 토론에 직접 참여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보완해야 

하는 부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규리는 그룹 수업에 금세 적응했다. 단순히 적응을 잘한 수준을 넘어, 이제는 누구보다 주도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 중 토론 

시간이 제일 즐겁다고 꼽을 정도다.

 물론 여러 사람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규리를 긴장시킨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일은 이제 없다.

 “선생님이 항파두리 역사문화재에서 시 낭송을 하자고 하셨어요. 시도 열심히 쓰고 연습도 많이 했는데, 행사날이 되니 너무 떨려서 걱정

이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비록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분

명히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어머니 경미 씨는 수업 초기와 크게 달라진 규리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다. 특히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는 표정부터 전

혀 다른 사람 같다고.

 “규리는 보통 친구들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달라졌어요. 이젠 친구들과 소통도 잘하는 것 같고, 저와 대화를 나누

다 생각이 다를 때면 ‘엄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제 생각은요.’라고 논리정연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요. 동생들이 다툴 때도 중재자 역할을 톡

톡히 하죠. 제법 어른스러운 제안과 해결책도 내놓고요. ‘규리가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매번 놀라네요.”

 한편, 수업 이후 부쩍 향상된 규리의 글쓰기 실력이 교내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 있었다. 굿네이버스에서 주최하는 ‘희망편지쓰기대회’에서 

규리가 장려상을 수상한 것. 전국 200만 명 이상의 초중고생이 참가한 큰 대회였고, 규리의 수상 장면은 학교TV를 통해 전교생에게 방영되

었다.

 규리는 ‘고봉선 선생님이 자신감을 이끌어준 덕분’이라며 ‘앞으로 영원히, 죽을 때까지 한우리에 다닐 생각’이라는 위트 있는 소감을 전했

다. 어머니 경미 씨 역시 ‘한우리 수업에 갈 때면 설렘과 기대감으로 규리의 표정이 밝아진다’며, ‘진정으로 아이들을 아끼고 변화시키려 노

력하는 선생님 덕분’이라고 고 실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본래 근처 시내에서 독서교실을 운영하다 사정상 이곳 고성리로 옮겨왔다는 고봉선 실장. 삼별초 마지막 항쟁지로 알려진 역사적인 곳이지

만, 시골 마을인지라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고. 하지만 막상 와보니 고 실장도, 함께 수업하는 아이들도 도시와는 또 다른 의외의 것을 누

수 있는 곳이었다.

 “마당에만 나오면 사시사철 꽃과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데, 마침 작년에는 <할머니의 사랑방 약방> 필독서 수업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민들

레며 냉이며 직접 눈으로 관찰했죠. 또, 수업 공간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어요. 어느 날은 뒤뜰 정자에서, 또 어떤 날은 데크

에 앉아, 때로는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수업을 해요. 자동차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한 곳이라 자연의 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결과적으로 고성리로의 이전은, 고 실장의 교육 철학을 실현하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이들이 ‘성적을 위한 공부’보다 ‘인생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과 어우러져 삶의 지혜와 본질을 익히고, 책 속 이야기들

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과정은 ‘인생을 위한 중요한 공부 중 하나’죠.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인생 공부에 보탬을 줄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자연이란, 끊임없이 새것과 새 빛을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한다. 자연을 닮은 고봉선 실장이 아이들과 또 어떤 성장 스토리들을 쌓아 나갈

까? 시골마을 독서교실의 내일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인터뷰를 마치며 고 실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도, 나이가 들어가니 감사한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간다’며, ‘규리를 비롯한 외도독

서교실 회원들, 제주지부 지부장님과 독서교실장님들, 선생님들에게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는 진심 어린 인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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