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체험학습그림으로 배우는 역사-공민왕의 개혁정치에 대한 꿈 (2019년 10월호)

강현철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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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산대렵도는 고려 말 개혁군주 공민왕의 그림입니다. 신선이 사는 천산에서 몽골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냥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잘 보이지 않지요. 그림이 너무 많이 훼손되었고 전체의 3분의 1만 남아서 그렇습니다. 후대 사람들이 그림을 차지하려고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고 해요. 그래서 여기에 보이는 그림은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훼손된 그림이 공민왕의 슬픈 마지막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공민왕 통치의 시작과 끝이 어떠했는지 살펴볼까요?

 공민왕이 왕위에 오르던 1300년대는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어려운 상황을 이어가고 있었어요. 몽골은 원나라를 세우고 고려에 침입해 40년간 전쟁을 했어요. 고려의 항복을 받았지만 몽골이 직접 통치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고려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며 왕의 인사권을 좌지우지했지요. 그래서인지 이 시기 왕의 이름은 충숙왕, 충선왕 등 몽골에 충성하겠다는 의미의 이름이 많아요. 그런데 왜 공민왕은 이름에 ‘충’자가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공민왕이 고려를 다스리던 시기는 중국에서 명나라가 일어나고 원나라가 쇠퇴하던 때였어요. 이 상황을 이용해 원나라를 등에 업은 친원 세력을 없애고 원나라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노력했지요. 공민왕은 축하연을 빙자하여 친원 세력을 유인해 없애버리고, 원나라가 지배하던 쌍성총관부도 무력으로 제압했어요. 이에 고려의 땅은 개국 이래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공민왕은 원나라의 머리 모양과 관례, 의복 등을 없애고 고려의 전통을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왕의 이름은 죽은 이후 정해지는데 원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의 방식을 따르며 공민왕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어요.

 공민왕의 왕비는 노국대장공주라는 칭호를 받은 원나라 공주였어요. 하지만 원나라의 지배에서 벋어나 고려를 세우려는 공민왕을 지지하며 친원 세력과 원나라의 위협에서 보호해주었어요. 두 사람의 사랑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해요. 그러나 노국대장공주가 아기를 낳다가 죽자 공민왕의 개혁정치도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아내가 죽은 슬픔에 정치를 신돈이라는 승려에게 맡기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어요. 하지만 이때도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기고 노비가 된 사람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지요. 그러나 당시 힘을 갖고 있던 권문세족의 반발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고 공민왕은 신하에게 죽임을 당했어요.

 공민왕은 고려를 원나라 침입 이전으로 돌려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 고려는 사대부도 생겨나고, 성리학도 들어와 조선을 건국하는 기틀이 형성된 시기였어요. 공민왕 시대 개혁에 대한 꿈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새로운 자주 국가를 만드는 바탕이 된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공민왕은 그림을 잘 그리고 글도 잘 썼지만 무예는 잘 못 했다고 해요. 그림 속에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은 무예를 잘 했으면 하는 꿈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공민왕은 개혁정치를 잘한 왕일까요? vs 개혁에 실패한 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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