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체험학습그림으로 배우는 역사-몸짱의 도시 아테네 (2019년 9월호)

강현철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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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옥중에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작가인 다비드는 소크라테스를 강직하게 열변을 토하는 듯한 영웅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영웅적인 모습을 한 소크라테스는 왜 옥중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아테네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맹주로 델로스 동맹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여러 도시국가에서 들어오는 전쟁 분담금을 관리하며 언제 터질지 모를 전쟁에 대비했지요. 이때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그리스의 초대 왕인 테세우스를 숭배하며 그의 외모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청년들은 거대하고 튼튼한 몸을 가진 테세우스 왕을 보며 몸짱이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외모의 치장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지요. 또한 다른 도시에 비해 부유했던 아테네의 시민들은 황금을 좇으며 더 큰 부자가 되려고 했고, 화장과 성형수술로 얼굴을 고치며 외모지상주의 사회가 되어갔어요. 왠지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성형수술과 몸짱 열풍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 똑같이 일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네요.

 이런 사회에서 살던 소크라테스는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를 가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그는 삶의 고뇌 없이 말초적 즐거움만 따르는 아테네인들을 보며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어요. 텔레폰네소스 전쟁에 참여한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의 죽음과 인간의 시체가 마구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전쟁 현장에서 많은 고뇌를 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삶에 대해 참다운 의미를 알지 못하는 아테네 사람들의 잘못을 꼬집어 주는 등에(날파리와 같은 곤충)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소크라테스는 거리와 시장을 다니며 ‘너 자신의 무지함을 알라’고 외쳤고, 청년들을 만나 토론하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래서 많은 청년과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따르고 배움을 청했지요.

 그런데 펠레폰네소스 전쟁에 패한 아테네는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시민들은 기존 가치관이 흔들리며 정체성 혼란을 느끼고 있었지요. 그러자 기존 권력을 잡고 있던 사람들은 이 혼란을 책임질 희생양이 필요했어요. 그러던 중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적국 페르시아에 망명한 사건이 발생하자, 청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죄를 붙여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지요.

 그림에서처럼 옥중에 많은 제자들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에요. 제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죄 없이 죽는 것보다 탈옥하기를 청했습니다. 사형을 판결한 사람들도 소크라테스의 사형집행에 부담을 느끼며 도망하기를 바랐다고 해요.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와 함께 죽음을 선택했어요. 악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악법에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법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리려고 했다는 주장도 있어요.

 황금을 따라가는 사람들, 외모지상주의자가 지배하던 시절 소크라테스가 있어 아테네인들은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가 생각을 깨우쳐주는 등에 역할을 할까요? 독서와 토론으로 생각을 넓히고, 깊게 하는 여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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