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독서교육명문가정의 독서교육-증국번 가(家) (2019년 7월호)

강현철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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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국번 가는 후난 성 상항(湘鄕)현에 명나라 때부터 수백 년간 살았지만 오로지 농업에만 종사했고, 학문이나 과거로 이름을 남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증국번의 할아버지(증옥병)는 건달이었고 그 아들 증린서(曾麟書)에 이르러서야 과거시험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계기를 만든 것은 증린서의 아버지 증옥병의 깨달음이다.

 

 청년 건달 증옥병은 제 손으로 농사를 지어 집안에 보탬이 된 적이 없었다. 35살 때 증옥병은 “아직도 건달생활을 하느냐?”는 마을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이런 증옥병에게 유일한 낙은 아들 린서였다. 효성이 지극한 린서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일찌감치 과거시험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이 소년도 동생시(童生試)에서 매번 낙방하고 말았다. 동생시는 과거 예비 시험으로 현시(縣試)·부시(府試)·원시(院試)가 있는데, 이를 모두 통과하면 생원이 된다. 생원이 되어야 비로소 과거를 볼 자격이 주어지고 이를 통과해야 진사가 된다. 증린서는 17번이나 동생시를 치러 43살이 되어서야 겨우 합격했다. 증린서의 아들 증국번은 아버지가 합격한 1년 후에 동생시에 합격했다.


 증국번은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 증린서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증린서는 집에 서당을 열어 학동 10여 명을 가르쳤는데 아들을 엄하게 키우기 위해 일곱 살 난 국번을 입학시켰다. 수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이고 수업 내용은 사서오경의 독해가 중심이었다. 가숙(家塾)에 들어간 국번은 자다가도 아버지의 닦달 때문에 일어나 공부해야 할 때가 많았다.


 증국번을 키운 것은 열정적인 독서였다. 한 번은 증국번이 서점에서 3,000권 정도의 책으로 구성된 ‘이십삼사(二十三史)’를 발견했다. 이십삼사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그 후 각 시대의 정사를 모아놓은 것이다. ‘그래, 당분간 입지 않을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면 책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돈이 없던 증국번은 지인에게 돈을 꾸고, 또 어머니가 지어준 옷가지들을 전당포에 모두 맡기고 그 책을 샀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고,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을 책 사는 데 다 쓰고 말았습니다.” 고향에 돌아온 국번은 아버지에게 주저하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너를 대신해서 빚을 갚도록 하지!” 야단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책을 사기 위해서라면 빚을 내도 좋고 전당포에 물건을 맡겨도 좋다.” 증린서의 이 말이야말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훈계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과거시험을 위해 상경해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친구들이 조금씩 갹출해 건네주었다. 증국번은 “이런 궁핍에서 벗어나려면 무조건 급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했다. 증국번은 회시, 공시, 복시 1등을 거쳐 전시에 합격해 한림원 서길사(庶吉士, 학문을 갈고 닦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관직)에 임명되었다. 1838년 27살 때이다. 증자의 70세손 증국번가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한 인간이 세상에서 쓸모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시험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올라야 하는 수많은 사다리 중에서 첫 과정이고 그 과정을 넘은 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입덕입공입언삼불후(立德立功立言三不朽) 위사위장위상일완인(爲師爲將爲相一完人), 즉 “덕을 세우고, 공을 세우고, 말을 세워 세 가지 불후의 공덕을 이루었고, 스승으로서 장수로서 재상으로서 완벽한 사람이었다”라는 의미다. 중국인들이 증국번을 칭송하는 말이다. 시작은 건달 아버지의 개과천선에서 그 아들의 과거시험 도전으로 이어졌고, 손자에 이르러 중국 최고의 경세가를 배출한 것이다. 증국번은 청나라 최후의 과거시험에 합격해 마지막 충신으로 이름을 드높인 구체제 관리였지만 새로운 세상을 여는 단초를 마련한 경세가로도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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