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도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2021년 1월호)

한우리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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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읽기 능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글을 익히기 시작하면, 부모님은 ‘더 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읽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 읽어주기를 그만둡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혼자서 책을 읽어나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라본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이 영 미덥지 않습니다. 책을 대충 훑어보기만 한 것 같은데 다 읽었다고 하고, 책의 내용을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책을 읽다가 자꾸 딴짓을 하고요. 독서록을 보면 더 한숨이 나옵니다. 아이는 왜 혼자서 책을 제대로 못 읽는 걸까요?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습니다.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다른 동물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읽기는 인간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더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외부의 자극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뇌의 회로가 달라진다는 뜻이지요. 인류가 읽기 능력을 습득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우리 뇌의 회로는 발달을 거듭했고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독서가 중요한 까닭은 ‘깊이 읽기’가 가진 잠재력 때문입니다.

깊이 읽기는 문장에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유추와 추론을 통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능력입니다. 따라서 독서의 질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사고의 질도 달라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왜 읽는지에 따라 생각하는 방법도 변하며,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1제곱센티미터 넓이의 뇌세포 안에 우리 은하의 별만큼이나 많은 연결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뇌가 본래의 기능을 넘어 읽기 능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형성하는 것도 이처럼 수많은 연결을 만드는 능력 덕분입니다. 뇌에 새로운 회로가 필요한 이유는 읽기 능력이 자연적인 것도, 타고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읽기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쯤 문자가 생겨나면서 비로소 만들어지기 시작한 능력입니다.

반면, 말하기는 좀 더 기본적인 기능에 해당합니다. 여기에는 전담유전자가 있어서 최소한의 도움만으로도 말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와 같이 새로 생겨난 발달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읽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모든 아이의 뇌가 자신만의 새로운 읽기 회로를 만들어가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읽기의 청사진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상적인 읽기 회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회로가 있습니다. 언어 발달과 달리, 읽기 회로의 청사진이 없다는 것은 학습 환경에 따라 읽기 회로가 상당히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읽기가 타고난 것이어서 아이가 적정 시기에 이르면 언어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형태’로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엄청난 착각 때문에 많은 아이와 부모, 교사가 불행을 겪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읽기는 배우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의 뇌는 읽기를 배울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뇌의 가소성: 외부 자극에 의해 뇌세포와 뇌부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신경계 연구에서 기억, 학습 등 뇌기능의 유연한 적응능력을 ‘뇌의 가소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생명과학대사전]


디지털 기기 읽기 vs. 종이책 읽기

디지털 세계의 정보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UCSD)의 정보산업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기가바이트입니다. 무려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엄청난 양이지요.

디지털 기기는 편리하게 새로운 정보를 얻도록 해주는 반면, 우리가 주의를 집중해서 글을 읽거나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최근 <타임>이 20대들의 미디어 사용 습관을 조사한 결과, 정보를 얻는 매체를 전환하는 빈도가 시간당 27회라고 합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횟수는 하루 평균 150~190회에 이르고요. 과다한 정보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많은 정보를 추구하는 것이 요즘 추세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기들이 쏟아내는 정보의 과부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첫째, 단순화합니다. 둘째, 정보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다 압축된 형태로 더욱 많이 읽습니다. 셋째, 선별합니다. 알아야 할 필요와 시간 절약의 필요 사이에서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밀도가 떨어지는 이런 식의 읽기는 가벼운 오락거리에 그칠 뿐입니다. 실제로 디지털 기기로 지식을 얻는 데 익숙한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tl;dr(too long, didn’t read: 너무 길어서 읽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필독서만 읽거나 그마저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어른들도 스크린과 디지털 기기로 읽으려 할 때마다 집중의 질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더 심각합니다. 끊임없이 주의가 분산되는 데다, 외부의 자극을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는 어떤 특징을 보일까요? 산호세대학교 지밍 리우 교수는 디지털 읽기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디지털 읽기에서는 대개 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텍스트상의 ‘단어 스팟’을 재빨리 훑어 파악한 후 결론으로 직행하는 ‘훑어보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세부 줄거리를 기억하거나 주장의 논리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노르웨이 학자인 안네 망겐은 한 실험에서, 학생들 한 그룹에게 소설책을 읽고 질문에 답하게 했습니다. 학생의 절반은 종이책으로, 나머지 절반은 전자책으로 읽게 했습니다. 그 결과,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은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매체로 많이 읽을수록 우리의 뇌 회로도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인쇄물을 읽을 때도 디지털 매체를 대하듯이 단어를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깊이 읽기가 가져다주는 비판적 사고, 공감, 이해 같은 것들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심지어 이런 겉핥기 방식의 읽기가 글쓰기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건너뛰기 읽기 방식에 익숙해지면 길고 조밀하게 단어가 적힌 텍스트나, 쉽게 파악되지 않는 복합적인 원고, 꼭 필요하지 않은 단어들을 선호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단어를 선택하는 폭이 좁아지고,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복합 구문과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게 되지요. 또 지밍 리우 교수가 말한 F자나 지그재그 형태로 텍스트를 읽으면, 자료의 본문에 나오는 배경 지식과 논증, 그리고 증거들은 스쳐 지나갔거나 대체로 읽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읽기 방식은 결국 완성도와 설득력이 떨어지는 글쓰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온라인 학습이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깊이 읽기 능력이 중요하다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읽기는 분명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디지털 매체는 아직 글을 모르거나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개별적 상황에 맞게 읽기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 도구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디지털 매체에서 짧고 자극적인 정보만 취하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읽기 능력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창하고 능숙한 읽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어의 다중적 측면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단어 해독에서 깊이 읽기 과정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와 문장을 반복해서 다시 읽는 것은 특정 텍스트에 관한 속도를 높이는 연습으로는 도움이 되겠지만 아이가 개념과 느낌, 자기만의 반성적 사고를 만들어가는 데는 결코 기여하지 못합니다. 특히 초등 고학년 시기는 읽는 법을 배우는 단계에서 읽기를 사고와 학습에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단계로 넘어가는 마지노선입니다. 미래의 학습력이 이 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읽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글을 해독하지 못하면 수학 등 다른 과목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에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발음 중심 접근법입니다. 이 접근법은 언어 원리의 기반이 되는 기본 요소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즉 단어는 소리 혹은 음소들로 구성돼 있고, 각각의 소리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글자에 대응하며, 읽기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이 규칙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반면 총체적 언어 접근법은 아이가 문자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명시적인 지도를 하거나 음소를 강조하지 않고 스스로 해독의 규칙을 추론하거나 파악하게 합니다. 발음의 원칙은 배제한 채 이야기에 대한 몰입, 작품의 진정성, 단어의 의미, 아이의 상상 등에 주안점을 둡니다. 두 가지 접근법 중에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가 읽는 법을 배울 때는 문자 해독의 기본 원리를 명시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에 대한 몰입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접근법 모두 적절히 활용한 읽기 교육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깊이 읽기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혜택은 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타인의 삶에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에도 강력한 의미를 갖습니다. 타인의 관점을 취해봄으로써 우리가 지닌 공감의 감각이 방금 읽은 것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세계에 관한 우리 내면의 지식까지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습된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인간다워지도록 도와줍니다.

MIT대학의 셰리 터클 교수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퍼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터클 교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해석합니다. 깊이 읽기는 책 속 인물들의 세계에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키워줄 수 있습니다.


언택트 시대, 양손잡이 읽기 뇌 개발하기

21세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도구와 매체를 넘나들 줄 아는 정신의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 시대의 아이들은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개발해야 합니다. 양손잡이 읽기 뇌란 인쇄 기반 읽기 능력과 디지털 기반 읽기 능력을 모두 갖춘 뇌를 말합니다. 이런 능력을 갖춘 아이들은 인쇄 매체와 디지털 매체 사이를 넘나드는, 그리고 나중에는 미래의 여러 매체들 사이를 오가는 전문가이자 유연한 코드 전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개발하는 것은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중언어 학습자들의 경우 부모는 각자 다른 언어로 말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주로 집 밖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 언어로 말합니다. 그런 식으로 이중언어 아동은 두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배웁니다. 이 아이들은 한 가지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갈 때마다 저지르는 실수를 점차 극복하고 나중에는 어떤 언어로든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덕분에 이중언어 사용자들은 이미 아는 단어와 개념을 불러오는 데 남들보다 유연한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개발하면, 이중언어 사용자처럼 종이책이든 디지털 매체든 유연하게 넘나들며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됩니다.

양손잡이 읽기 뇌를 개발하기 위해, 깊이 읽기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종이책과 인쇄물을 주로 사용해 읽기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읽기에는 시간이 걸리고,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남는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종이책을 통해 천천히 깊게 읽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나면 온라인 콘텐츠를 읽는 동안에도 종이책 읽기에서 배운 유추와 추론의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학습 과제에 맞춰 스스로 어떤 매체가 더 좋은지를 알아갈 것이고, 매체에 상관없이 깊이 읽고 깊이 사고하는 법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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