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그림책으로 아이들의 감수성 건드려주기(2020년 12월호)

한우리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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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通그림책 감상법으로 깊게 읽기

“선생님, 그림책 읽으면서 아이와 오랜만에 도란도란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도대체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학부모님과 상담을 해보면 그림책을 읽고 나서 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몰라서 망설일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그림책을 읽고 아이가 어떤 부분에 공감했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이 책 어땠어?”라고 물으면 기껏해야 “좋았어요!”라는 단답형 대답으로 끝날 때가 많아 서운하다. 조금 더 묻고 싶어서 “어떻게 좋았는데?”라고 묻고 표정을 살펴보면 어느새 아이는 대답하기 싫은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부린다. 아이도 나름대로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말문을 틔워줄 수 있을까?

이럴 때 아이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림책 읽기 방법 ‘통通그림책 감상법’을 추천한다. 통通그림책 감상법은 나와 마음이 통하는 그림책 한 장면에 집중해서 그림책을 읽는 방법이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나면 아이에게 다음의 핵심 질문을 건네보자.


아이에게 좋아하는 그림책의 한 장면을 보여 달라고 청하면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한 장면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미 마음에 품고 있던 장면을 곧장 찾아서 펼쳐 보이는 아이도 있다. 두 장면 중에 하나를 고르느라 골똘히 고민하는 아이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장면을 고르는 아이도 있다. 중요한 건 아이가 찾은 장면을 존중해주는 태도다. 아이가 스스로 고른 장면이라면 무엇이든 감탄하고 귀 기울이자.

아이가 하나의 장면을 선택했다면, 거기엔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장면에서 읽은 문장 하나가 마음을 건드렸을 수도 있고, 주인공 옆에 있는 작은 애벌레가 꼭 나 같아서 공감했을 수도 있다. 장면을 보자마자 작년에 나를 속상하게 했던 친구가 떠올라 울컥 눈물이 나왔을 수도 있고, 왠지 색감이 마음에 들어 끌렸을 수도 있다. 그림책 장면을 풍부하게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아이의 감수성을 건드려주자.


자신이 좋아하는 한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하고싶은 말이 많아진다.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왜 하필 이 장면이었는지, 여기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느라 어느새 이야기의 물꼬가 터진다. 아이가 쏟아내는 이야기 안에는 요즘 마음이 머무는 화두, 미처 말하지 못한 고민거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림책을 통로로 아이와 교감하고 대화하는 기쁨에 푹 빠져들 수 있다.


통通그림책 감상으로 가족과 대화하기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통通그림책 감상법으로 읽기 좋은 그림책은 무엇일까? 가족이 모여 앉아 마음을 나누면서 감수성을 건드릴 수 있는 그림책을 추천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 요즘 아이들은 학교나 놀이터가 아닌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가족과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짜증도 늘고 다툼이 잦아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 아이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그림책은 무엇일까? 부모님은 닫힌 방문 너머로 아이 등만 쳐다보느라 애가 타는데, 정작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부모님께 서운한 게 많다. 그림책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허은미 글, 김진화 그림, 웅진닷컴)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엄마는 너무해! 만날 내가 제일 좋다면서 툭하면 나한테 화를 내잖아.”

“아빠도 정말 너무해! 아빠는 늦게까지 텔레비전 보면서 나보고만 일찍 자래.”


가족에게 자꾸만 서운해진 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가족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투덜대면서 내 마음도 몰라주는 부모님과 거리 두기를 자처한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 거야.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고,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을 거야.” 굳은 다짐과 함께 나만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삽으로 흙을 퍼내면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이 아이, 가만보니 어딘지 좀 수상하다. 그토록 가족과 멀어지고 싶다더니 허리춤에 빨간 털실을 동여매고는 방문 손잡이에 꽁꽁 묶어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깊게 땅굴을 파고 내려가도 가족과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부모님과 거리 두기를 시도하면서도 사실은 가족과 어떻게든 이어지고 싶다. 겉으로는 시큰둥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족과 절대 멀어지고 싶지 않은 아이의 애절한 마음이빨간 털실의 은유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반어법 그림책이다.

코로나19와 함께 한 해를 보내면서 비대면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따금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마스크로 무장한 채 각자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답답하다. 올 연말에는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그림책 한 권을 무릎 사이에 두고 다음과 같이 대화해보자. 서로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면서 마음이 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래 친구 작가들이 쓴 그림책 함께 읽기

통通그림책 감상법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면, E-book을 통해 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자. 특히 또래 친구들이 작가가 되어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이라면 어떨까? 아이들은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가 지은 그림책보다 또래 친구가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에 훨씬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의 창작 그림책은 ‘교육미술관 통로(www.museum-tongro.com)’ 홈페이지를 통해서 전국 각지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다. 사이트에 접속해서 그림책 표지를 클릭하면, 전자책 페이지로 연결되어 E-book 형태로 그림책을 볼 수 있다. 독서교육 강연이 있을 때마다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과 학부모님에게 이 사이트를 소개한다. 그림책을 창작하는 것만큼이나 창작한 그림책을 다양한 독자와 함께 감상하는 것은 중요하고 즐거운 일이다.


가정에서도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교육미술관 통로’를 통해서 어린이작가들이 쓰고 그린 그림책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아이들이 창작한 200권 넘는 그림책 가운데 저·중학년, 고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그림책을 두 권 소개한다.


① 초등 저·중학년 추천: 기린의 날개(심예빈, 교육미술관 통로)

<기린의 날개>를 쓰고 그린 어린이작가 예빈이는 어느 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발견한다. 그림책을 펼치면, 액자 속에 살고있던 어린 기린의 목이 길게 자라난다. 기린은 자신의 긴 목이 액자틀에 부딪쳐서 휘어진 것을 발견하고 이제 틀 속에서 살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많이 성장했음을 깨닫는다.

‘호이짜, 호이짜! 찌지직, 쩌저적!’ 기린은 틀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긍정의 에너지를 가득 품은 기린은 마침내 틀을 깨고 넓은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처음에는 넓은 땅으로 나와 걷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나와서 고개를 들어보니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나도 저 새처럼 하

늘을 날아보고 싶어!”

하늘을 날고 싶은 기린은 날개를 찾아 나서고, 우여곡절 끝에 날개를 얻어서 꿈을 이룬다. 기린이 어떻게 꿈을 이루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아이와 함께 아래의 전자책 QR코드를 통해서 직접 그림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독서 경험은 직접 그림책을 펼쳐서 글을 소리 내어 읽고 그림을 눈으로 감상하면서 그 리듬과 호흡을 느낄 때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② 초등 고학년 추천: 어둠 그리고 우주(신현서, 찰리북)

6학년 어린이작가 현서가 창작한 <어둠 그리고 우주>는 ‘교육미술관 통로’를 통해서 2016년에 독립출간한 이후, 2020년 4월에 ‘찰리북’에서 정식 출간했다. 이 그림책은 공교육의 교실 속 수업에서 어린이작가가 펼쳐낸 작품으로서 고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자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현서가 창작한 <어둠 그리고 우주>에 등장하는 어둠도 사춘기 아이들처럼 고민한다. ‘나는 왜 남들과 달리 어둡게 칙칙하기만 할까?’ 모두가 알록달록해 보이는 세상에서 어둠은 스스로 초라해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나도 쓸모 있는 구석이 있을까?’ 어둠은 존재 이유를 찾고 싶어서 길을 떠난다.

어둠은 친구를 찾아 헤매지만, 어디에서도 공감받지 못한다. 아름다운 꽃밭, 단단한 바위산, 우울한 도시…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 상처만 잔뜩 받은 어둠은 눈물을 흘린다. 슬픔에 빠져 있던 어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반딧불은 땅거미가 내려앉는 어슴푸레한 숲에서만 그 빛을 드러낸다. 별은 종일 그 자리에 떠 있지만, 어둠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제빛을 낸다. ‘어두울 때만 보이는 것이 분명히 있구나. 그렇다면 반짝이는 별을 품은 우주는 분명 나와 같은 색이야.’ 마침내 자기 안에서 우주를 발견한 어둠은 더는 외롭지 않다.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찾았으니까.

인간은 자기를 표현할 때에만 채워지는 마음의 공간이 있다. 현서는 그림책을 통해서 자기 안의 어둠을 드러냈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현서가 쓰고 그린 그림책의 내용처럼 저마다 자기만의 우주를 발견했다면, 우리는 이미 삶의 온전한 주인이다. 현서가 건네는 묵직한 위로를 가슴에 품었던 날, 나는 큰 위안과 심리적 포만감을 느꼈다. 여러분에게도 그 감동을 흘려보내고 싶다.


그림책과 통(通)하는 기쁨

그림책은 글이 짧지만 한 권 안에 완결된 서사를 지녔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독서 활동을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르다. 처음엔 무심코 책을 펼쳤어도 일단 책과 통(通)하는 경험을 해본 아이는 그 다음 책, 또 그 다음 책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디딘다. 올 연말에는 가정마다 그림책 한 권을 통로로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쁨에 푹 빠져들기를 바란다. 코로나 19로 인해 감수성이 메말랐던 아이들의 가슴에 다시 촉촉한 물기를 머금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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