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만 찾는 아이 vs. 질문하는 아이 - 하브루타와 함께하는 가족 독서 (2020년 11월호)

한우리
2020-10-28
조회수 223



‘질문’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수염을 가슴팍까지 엄청 길게 기른 할아버지랍니다. 어느 날, 한 꼬마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했습니

다.

 “할아버지는 주무실 때 수염을 이불 안에 넣고 주무세요? 아니면 밖에 꺼내놓고 주무세요?”

 할아버지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곧장 답을 해주었을까요? 아쉽게도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답을 말해주지

못했답니다. 수염을 기른 채 긴 시간 살아왔지만 자신이 잘 때 수염을 어떻게 하는지 미처 생각해보지 않은 거지요.

 여러분에게 이 할아버지의 ‘수염’과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할아버지의 수염은 자기 것이지만 자기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이어령 교수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쓴 『생각 깨우기』라는 책에서 아

무 생각 없이 모든 순간을 습관적·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이야기 속 할아버지와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속으로

‘뜨끔’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같은 책의 이 문장은 어떤가요?


 가끔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이 문장을 들려주고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곰 인형과 다르니?”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자기 안의 물음표가 있나요? 나의 인생을 이끄는 질문, 부모로서의 질문이 있나요? 하브루타는 여러분의

그 ‘질문’을 꺼내어 자녀, 부모, 아내, 남편, 친구 등의 짝과 함께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생각도 깊이 있게 경청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더 좋은 질문과 답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나의 생각과 상대

의 생각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브루타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넘나드는 시간입니다.


유대인의 하브루타 vs 한국인의 하브루타

 저는 고 전성수 교수의 책『부모라면 유대인처럼 하브루타로 교육하라』를 통해 하브루타를 처음 만났습니다. 전 교수는 이 책에서 ‘하

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정의로 출발해 제가 익히고 실천하고 있는 하브루

타는 결코 유대인의 하브루타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하브루타는 탈무드 공부법입니다. 탈무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우화 형식의 이야기책만이 아닙니다. 실제 탈무드는 유대인의

구전 토라(구약 성경)를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 주석과 해석을 달아 놓은 율법서입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읽고 이해하기는 어려운

책입니다. 이렇게 혼자서 읽고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과 탈무드를 읽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 유대인의 하브루타입니다.

 ‘하브루타(Havruta)’가 한국에 ‘질문’과 ‘토론’의 문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지 어언 8년째입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하브루타가 교수

학습법으로 활용되면서 2015년 개정교육과정 교과서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교과서에 ‘친구와 묻고 답하기 놀이’를 하라며, 친구

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페이지가 곳곳에 추가되었습니다. ‘위의 글을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가 익숙한 부모 세

대에게는 참으로 낯선 일이지만, 매우 반가운 변화입니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학생이었을 때 스스로 질문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주어진 질문에 대한 정답을 강요받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보다는 지식을 경쟁적으로 암기하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정답’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렵고, 그 질문에 나만의 해답을 찾고,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해답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세대입니다. 질문하는 것도, 경청

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연습 파트너로 자녀와 가족을 추천합니다. 하브루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

께’ 하는 것이기에(하브루타는 짝과 우정, 친구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시간이 되

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는 어떻게 실천하나?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3종 세트를 떠올려 보세요. 혹시 ‘지시, 명령어’가 하나쯤 포함되어 있나요? 저는 가정에서

하브루타를 실천하는 첫걸음으로 ‘지시어, 명령어’를 ‘질문’으로 바꾸는 것을 권합니다. 지시, 명령을 받으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해답을 찾기를 원한다면 지시어, 명령어를 멈추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하지 않

을까요? 아울러 삶에서 만나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질문과 대화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에서, 일상에서 하브루타를 실

천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유대인 부모는 무언가를 지시하고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보다 “네 생각은 어때?(마아따 호쉐프?)”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세종

대왕 역시 신하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경의 생각은 어떠시오?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무엇이오?”라고 합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자주 “네 생각은 어때?”라는 질문을 합니다. 요즘은 오히려 아이들이 저에게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지

만요.

 다음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당시 초등 6학년, 초등 1학년 두 아들과의 밥상머리 대화입니다.


 아침이라 이야기는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대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식사 자리에서 읽은 책 이야기, 하루 동안 겪은 이야기, 엄마 아빠의 어렸을 때 이야기, 뉴스 등에 대해 질문하며 이야기를 나

눕니다.

 위의 대화를 보면 제가 중간 중간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보자’고 합니다. 아이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논어의 한 문장을 말한 것에서

‘질문을 만들어볼까?’로 연결되어 큰아이의 질문이 그대로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그 사이사이에 저의 질문이 곁들여져서 대

화가 이어집니다. 제가 하브루타를 배운 후 달라진 점입니다. 예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인 제가 주로 질문을 했다면, 하브루타

를 적용하고서는 아이들의 질문을 꺼내어주고, 그 질문을 토대로 자유롭게 대화, 토론을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일상에서 아이에게 “네 질문은 뭐니?”,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니?”라고 물어주세요. 그리고

아이가 꺼내는 질문과 답을 소중하게 다루며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 그것이 일상 하브루타의 시작이고 어쩌면 전부이기도 합니다.



하브루타와 독서는 어떻게 연결될까?

 사실, 하브루타와 독서는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 역시 토라와 탈무드를 읽고 토론하는 것이기에, 하브루타는 독서와 독

서토론을 모두 포함하니까요. 하브루타 독서는 질문 독서이고, 말하는 독서입니다. 즉, 어떤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에 대해 스스로 질

문을 만듭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텍스트를 더 자세히 읽고,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견주어보게 됩니

다. 또 자신의 질문에 대해 다른 사람과 토론하며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키워갑니다.

 우리 가족은 한 달에 서너 번 온 가족이 함께 같은 책을 읽고 하브루타 독서토론 시간을 갖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독서토론을 하나 소개합니다.

 강경수 작가의『꽃을 선물할게』그림책으로 진행한 날이었습니다. 『꽃을 선물할게』는 거미줄에 걸린 무당벌레가 곰에게 살려달

라고 애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사이사이 무당벌레의 독백, 곰의 독백이 삽입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한 그림책입니다. 우리 가족은 그림책의 특성에 맞추어 ‘아침’에 일어난 일에 대해 질문을 만들고, ‘점

심’, ‘저녁’에 일어난 일에 대해 각각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이 질문 중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을 골라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 중, 가장 몰입하였던 질문은 ‘내가 무당벌

레라면 어떻게 목숨을 구할까?’ 였습니다. 아침의 무당벌레는 그저 감정에 호소했어요. 살려달라고! 점심의 무당벌레는 더 불쌍해 보

이려고 거짓말까지 했지요. 하지만 거짓말이 탄로 납니다. 저녁의 무당벌레는 곰이 자신을 구해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듭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협상과 홍보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눔은 물론 측은지심을 부각시키는 아침의 무당벌레와 같은 방식의 ‘기

부금 모금 운동’과 저녁의 무당벌레와 같은 방식의 ‘기부금 모금 운동’을 비교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우리 가족만

의 은어가 생겼습니다.

 큰아들이 “엄마, 저 친구 만나러 가는데 5천 원만 주세요.” 하고 말하면, “넌 아침의 무당벌레구나.”라고 응수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에 큰아들이 엄마가 5천 원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고 와서 말하지요. “엄마, 엄마는 제가 행복한 게 가장 행복한 거지요?” 이

렇게 시작하는 멘트, 뒷말은 상상이 되지요?

 하브루타는 함께 읽기의 힘, 질문독서의 힘, 슬로리딩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하브루타 독서토론의 후

기로 “책의 한 문장마다 모두 좋은 질문과 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을 때의 그 벅참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삶에 대해, 책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며, 친구들과 혹은 부모와 토론한 기억이 얼마나 있나

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세상과는 너무 다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단 하나의 정답을 제시할 수도 없고, 해

법을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좋은 답을 찾아내는 힘입니다. 이

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녀와 하브루타 하는 시간은 질문하고, 철학적인 탐구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협상과 협력에 대해, 때로는 지식과 지

혜에 대해, 때로는 자신감과 자존감, 자유, 용기 등에 대해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시간은 자녀뿐만 아니라 우리

에게도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브루타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선물합니다. 지금, 시작해볼까요?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