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아이로 키우려면 부모부터 쓰자 (2019년 7월호)

강현철
2019-07-02
조회수 45


아이들에게 글쓰기란?

 글쓰기라는 단어가 반가운 사람이 있을까요?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짧아지는 연필 덕에 굵어지는 글씨, 한

가득 쌓여버린 지우개 가루, 하지만 별다른 실적도 없이 지운 흔적만 가득한 공책. 문제는 아이들이 부모의 떨떠름한 학창 시절을 그대로 닮아

가고 있다는 겁니다.

 2014년, 한 교육회사가 초등학생 2,479명을 대상으로 “가장 싫은 방학숙제”를 조사했는데 1위가 바로 ‘일기쓰기’였습니다. 약 8,000명을 설

문한 2009년 연구에서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고 하니 ‘일기쓰기’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시대를 막론하고 초등학생이 기피하는 공공

의 적인 게 분명합니다.

 안타까운 결과이지만 그 일기가 바로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일기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 딱히 쓸 말이 없어도 써야 하는

과제, 고된 창조 작업 뒤에 달갑지 않은 검사까지 받아야 하는 정신노동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쓰는 게 싫어지면서 독후감, 체험학습보고서, 신문 만들기 등 아이들이 ‘쓰기’와 관련된 숙제 대

부분을 부담스러워하게 됩니다.


글쓰기는 평생 따라온다

 “당신이 전쟁에 관심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자 트로츠키의 말입니다. 세상은 내 관심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는 거죠. 지금도 지구촌 누군가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과 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어디 전쟁뿐인가요. 경제에 관심이 없어도 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공기에 무관심했던 우리가 이제는 매일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냅니다. 어떤 일에는 의식적으로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거죠.

 글쓰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쓰기 싫어도 세상은 우리의 글을 원합니다. 학교는 제대로 공부한 결과를 학생의 글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객관

식으로 공정하게 평가받게 해달라고 소리쳐도 시대의 흐름은 이제 서술과 논술로 넘어갔습니다.

 대학에서는 모든 평가가 글로 이뤄집니다. 네댓 장짜리 요약보고서는 물론 스무 장 가까이 되는 연구보고서까지. 온통 써내라는 말뿐입니

다. 계열 구분 없이 모든 전공과 과목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학습 결과를 글로 보여줘야 합니다.

 사회의 글쓰기는 더 가혹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죠. 직장인의 상당수가 보고서 등의 문서 작성, 즉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

며 직장생활의 성공요인으로 글쓰기 능력을 꼽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이끌던 글쓰기가 사회에서는 승진, 자존감, 경제력, 권력 등으로

이어집니다.


공교육도 글쓰기, 글쓰기!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모든 과목의 서술형 평가를 의무화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서울 지역 중·고등학교의 서

술형 및 논술형 시험과 수행평가의 합계 비율을 50% 이상으로 한다고 하죠. 또 중·고등학교의 정기고사에서 서술형 및 논술형 문항 비율을

최소 20% 이상 적용한다는 방침입니다. 특히 중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과목 중 최소 1과목 이상에서 지필고사의 객관식

선다형 문항을 없애고 서술형 및 논술형 시험이나 수행평가만으로 성적을 냅니다. 일부 교육청은 전 과목을 서술 및 논술형으로 평가하는 국

제바칼로레아 도입도 검토 중입니다.


앞서가는 하버드의 글쓰기 교육

 사실 글쓰기는 일류대학의 주요한 교육방식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신입생 422명을 4년간 추적한 연구를 보면, 글쓰기 수업 덕분에 학교 생활

에 더 동참하게 되었고(73%), 수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73%), 수업이 재미있어졌으며(66%),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거나(57%), 새

로운 관심 분야를 발견했다(54%)고 합니다. 자체 통계에 따르면 학생 한 명이 해마다 평균 11kg의 종이를 글로 써낸다고 해요. 또 졸업생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현재 자신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 ‘글을 잘 쓰는 기술’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90%에 달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이미 1872년부터 논증적 글쓰기(EXPOS, Expository Writing Program) 강좌 이수를 졸업의 필수 조건으로 지정했

습니다. 특히 15명 이내로 진행되는 EXPOS 20에는 음식문화, 문화충격, 생태위기와 기후변화, 실존주의, 인간과 자연과 환경 등 다양한 강

좌가 개설됩니다.

 와튼스쿨도 글쓰기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최우선순위에 둡니다. 모든 학생이‘글쓰기세미나’를 들어야 하죠. 이공계 명문인 MIT는

졸업생의 강력한 건의로 글쓰기 센터를 세웠습니다. 시인, 소설가,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전담교수진에게 글쓰기를 배우며 갈릴레이, 뉴턴 등

위대한 과학자들이 모두 대단한 글쟁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뒤쫓는 서울대의 글쓰기 교육

 서울대학교는 매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입학 전 영어(TEPS), 수학, 물리, 화학의 성취도를 평가해 왔는데요. 2017년부터는 글쓰기 과목을

추가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입학생의 수준이 애초부터 낮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기초교육원은 응시자의

25%(63명)가 정규 글쓰기 과목을 수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죠. 이에 2018년 2월 글쓰기지원센터를 새롭게 출범하지만 그 무렵 입학한 신입

생의 수준은 더 나빴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서울대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2019년 신입생부터는 글쓰기 기초를 대학 글쓰기1(국어국

문학과 주관)과 대학 글쓰기2(기초교육원 주관, 인문학/사회과학/과학과기술 3개 영역으로 구분)로 분리하고 동시 또는 역 수강 금지, 단계

적 수강 등의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평가 방식 또한 성적 등급을 A는 20~30%, B는 30~40%, C 이하는 30~50%의 비율로 제한했던 기존의

상대평가 제도를 버리고 절대평가를 도입했습니다.


글쓰기에서는 초기 경험이 중요

 ‘나는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을 뜻하는 쓰기 효능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장 높다고 합니다. 이후 꾸준히 감소하

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가 두 번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와 고등학교 1학년 때입니다. 4학년 때를 살펴보면 교과 내용이 어려워지고 어

려운 어휘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자유롭고 비형식적인 글쓰기를 넘어 논설문이나 설명문 등의 과제도 시작됩니다. 다른 교과

목에서도 쓰기 과제가 주어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커집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긍정적인 경험을 지속적으로 맛봐야합니다. 엄마아빠가 함께 쓰기에 대한 성공경험을 만들어주세요. 눈높

이를 아이에게 맞추면 됩니다. 세 가지 접근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 니다.

 첫째 장벽부터 허물어주세요.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쓰기를 싫어합니다. 일기, 맞춤법, 받아쓰기 등 유쾌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

므로 ‘글쓰기’ 하면 즐겁고 재미있다는 긍정적인 정서가 동반되도록 판을 다시 짜야 합니다. 글쓰기는 싫어도 글을 썼던 장소, 함께한 친구, 재

미있는 활동 등이 마음에 들면 다음에도 즐겁게 쓸 확률이 높습니다.

 추천하는 방법은 음식과 글쓰기의 조합입니다. 떡볶이 혹은 치킨, 무엇이든 좋습니다. 저는 아들과 친구 몇몇을 데리고 떡볶이 집에서, 카페

에서,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집에서 글을 씁니다. 책상 앞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마치 작가처럼 글을 쓴다고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친구들,

맛있는 음식, 유쾌한 장소. 이 세 가지만 갖춰도 아이들은 훨씬 편하게 씁니다.

 둘째 글의 주제를 일상과 연결해주세요. 떡볶이의 맛, 떡볶이 만들어 먹은 날, 떡볶이 집의 풍경 등 내가 방금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게 해주세요. 글의 주제가 자신과 가까울 때 더 많이, 편하게, 기꺼이 쓸 수 있습니다.

 셋째 지우개를 버리세요. 올바른 표현과 문장으로 고쳐주려고 하면 서로 피곤해집니다. 아이는 독자 없는 글을 12년이나 쓰는 무명작가

입니다. 외로운 작가에게 먼저 팬이 되어 주세요. 친절한 독자가 되어 형식이 아닌 ‘내용’을 언급하며 공감하면 마음이 열립니다. “영희는 토끼

처럼 털이 부드러운 동물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한 마디의 표현만으로 충분합니다. “여기 받침 ‘ㅌ’이라고 몇 번 말했어. 지우개 가져와.” 이런 

말보다 훨씬 더 힘을 주겠죠?


글 키우기와 다듬기

 쓰고 싶은 주제로 쉽게, 많이, 기꺼이 쓰도록 돕는 게 초기 글쓰기 경험의 핵심입니다. 풍부하게 쓰는 경험 그 자체가 긍정적인 정서를 남겨줍

니다. 

 이를 도와주려면 세 가지를 염두에 두세요. 우선 주제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를 함께 찾아주세요. 축구, 인형, 도마뱀, 캠핑, 로봇, 곤충 

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이와 관련해 생김새, 용도, 만드는 과정, 활용하는 법 등을 자유롭게 쓰도록 이끌어주세요. 이후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독서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독서는 글쓰기의 욕구를 자극합니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게 되었으니까요. 읽기와 쓰기는 서로 유혹

하는 관계가 됩니다.

 다음은 질문입니다. 종이 한 켠에 육하원칙에 해당되는 의문사 여섯 개를 써놓고 글을 쓰게 하세요. 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글

을 쓰면서 막힐 때 이 의문사를 이용해서 질문을 만들고 답을 하면 됩니다.


 먼저 질문을 스무 개 정도 만들어놓고 답을 달듯 글을 써도 됩니다.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게 익숙해지면 어떤 글이든 쉽게 쓸 수 있습니다. 왜

냐하면 모든 글과 책의 목차가 바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스무 개 만들 수 있으면 글 한 편을 쓸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구분해서 보는 겁니다. 어떤 사물, 사건, 현상을 최대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쓰려면 구분해야 합니다. 떡볶이를 예로 들면 맛, 생김

새, 냄새, 식감, 온도, 그릇에 담긴 모양 등으로 나눠서 쓰도록 일러주세요. 관찰에만 집중하지 말고 청각, 후각, 촉각, 미각도 한 문장씩 쓰게 합

니다. 유쾌한 분위기에서 먹으면서 하면 효과가 좋겠죠?

 그리고 이렇게 써내려간 글을 천천히 두세 번 다시 읽어보면서 틀린 부분을 스스로 고치는 게 글쓰기의 마무리입니다. 다시 읽기만 해도 틀린 

부분이 보입니다. 틀린 부분을 적당한 원고지 교정부호, 쉽게 말해 삭선과 화살표로 빼거나 추가하면 그만입니다. 지울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

들은 지웠다 다시 쓰면 손이 아프다며 빠져나가려고 할 겁니다. 그러니 원래 쓴 글 위에 그대로 고치면 됩니다.

 물론 이렇게 쓴 글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논리를 찾기 힘들 수도 있죠. 실망하지 마세요. 주제나 장르와 무관하게 글을 쓰는 행위 자체

가 논리적인 활동입니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쓰는 양이 축적되면 점차 앞뒤 연결이 자연스러워집니다. 다시 읽고 고

치는 습관, 적절한 독서, 다양한 경험 등이 어우러지면서 아이의 필력이 도약할 겁니다.


일상의 글놀이

 아이가 한글을 배우고 글씨를 쓰는데 익숙해졌다면 글놀이를 시작해보세요. 쓰는 활동이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겁니

다. 흔하게 할 수 있는 게 단어 찾기입니다. ‘이’, ‘책’ 같은 특정 글자가 들어간 사물을 찾아내는 겁니다. 단서를 찾는 탐정처럼 집 안을 돌아다니

며 ‘종이’, ‘드라이기’, ‘곰돌이인형’ 같은 단어를 찾아서 메모지에 기록합니다. 사탕이나 과자 등으로 간단한 보상을 해주면 좋겠죠. 쓰는 행위를 

편하게 생각할 겁니다. 끝말잇기도 좋습니다. 단어 하나마다 작은 과자 한 조각씩 먹으며 종이에 써서 주고받는 겁니다.

 초등 3학년 정도 되면 단어로 이야기 쓰기, 8행시 글짓기, 끝말잇고 글쓰기 등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것도 좋습니다. 무관한 단어를 한 

편의 글에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는 거죠. 단어로 이야기 쓰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단어 다섯 개를 종이 한 장에 하나씩 씁니

다. 그걸 섞어서 다시 나눠 가집니다. 아이는 사탕, 인형, 종이, 숙제, 책을 써냈지만 정작 손에 든 단어는 사탕, 인형, 종이, 그리고 엄마가 쓴 김

치찌개, 인터넷입니다. 이 낯선 단어의 조합으로 글을 쓰는 거죠. 어려울 것 같아도 재미있게 쓴답니다. 엄마도 같이 써서 읽어주세요. 아이도 

좋아할 겁니다.


엄마아빠의 글쓰기가 아이의 글쓰기로!

 글쓰기는 절대 단숨에 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축적된 언어능력과 지식, 감정, 경험 등이 글로 나옵니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아이

가 언어활동에 친숙해져야 합니다. 유쾌한 대화가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쓰는 일이 낯설지 않고 자주 목격했던 행위여야 합니다.

 부모가 독서뿐 아니라 메모하고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달력, 포스트잇, 종이조각 등을 이용해서 집 안 곳곳에 붙여두세요. 

아이들도 따라 합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글쓰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습니다. 일상 스토리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평생 외면했던 글쓰기, 다시 만나보면 어떨까요?

 앞에서 얘기했던 방식을 엄마아빠에게 먼저 적용해보는 겁니다. 좋아하는 주제로 쉽게, 많이, 기꺼이 쓰는 겁니다. 잘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일단 쓴 다음 천천히 다시 보며 고치는 겁니다. 도서관 강좌나 영상 콘텐츠도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건 부모가 먼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겁니다. 먼저 맛을 보세요. 글쓰기의 힘을 체험한 사람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글쓰기를 제대로 지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아빠가 나서야 합니다. 남성이 책을 보고 글을 쓰는 모습을 목격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독서와 글쓰기를 강조하는 사

람도 엄마나 선생님 등 대부분 여성입니다. 아들에게는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유명한 스포츠 선수의 자서전을 보며 운동선수가 글도 쓰는 작

가라고 알려줘도 좋습니다. 아빠가 책을 가까이하고 글을 쓴다면 아이들이 따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엄마아빠가 먼저 쓰세요. 무거운 과거의 경험을 지우고 글쓰기와 다시 사랑에 빠져보세요. 아이에게 글쓰는 일의 즐거움과 효과를 말해주세

요. 아이도 즐겁게 따라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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