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를 끄면 가족이 살아난다 (2019년 5월호)

강현철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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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가족

 오늘날 우리 가정에는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도 아니고, 자녀와 같이 ‘혈연이나 입양’으로 탄생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된 것이 있다. 가족이 아님에도 가족이 되어버린 그는 부부가 혼인식도 하기 전에 그들이 마련한 신혼집에 먼저 자리를 잡고 들어왔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거실에서 모든 가족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중심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가족을 독점하기 위해 ‘리모컨 쟁탈전’ 같은 이벤트를 개최하여 가족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며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 고도의 전략을 실행한다. 그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가족들이 듣도록 큰 소리로 말을 시작한다. 오늘 출근길 날씨가 어떻다는 둥, 밤사이 지구촌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둥, 어젯밤 프로야구 경기 결과는 어떻다는 둥... 가족이 일터나 학교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면 그는 혼자 주도적으로 이야기하며 모든 가족이 자신을 바라본 채 듣게만 만든다. 그래서 가족이 밖에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하며 지냈는지 서로 알 수 없도록 만든다. 즐거운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감사한 일 등 소소한 일상을 가족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빼앗아 간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만 끊임없이 지껄인다는 것만 빼면 가족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다. 때때로 가족들이 울적할 때나 외로움을 느낄 때, 그들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세상의 재미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어 말해준다. 그는 가족 곧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와 자녀가 옆에 없어도 자신하고만 있으면 절대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그는 직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위해 보육까지 담당한다. 다만, 부모는 그가 아이의 인성을 망치는 쓸데없는 정보를 너무 많이 가르쳐준다는 부작용이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 박사는 그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지구인은 그를 거실에 가정교사로 모시고 자녀들에게 음란과 폭력을 가르치는 온 우주의 유일한 종족이다.” 사전적 정의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바로 ‘텔레비전’이다.


남편, 아내, 자녀에게 유일한 가족이 탄생하다


이러한 텔레비전조차 가족의 자리에서 밀어낸 더 강력한 존재가 탄생했다. 지금으로부터 고작 10년 전에 태어났지만, 금방 모든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는 거실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자의 손 안에 자리 잡았다. 화장실에도, 침대에도, 식탁에도, 일터나 학교에도 늘 동행한다. 가족 간 소통에도 그의 허락이 필요하다. 자기 방에서 공부하는 자녀가 어머니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할 때조차 그를 통한다. 그는 부모와 자녀 간에 갈등을 만들어내고 키우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광고기업 ‘디엠씨 미디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TV 시청자의 93%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동시에 스마트기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아빠에게 아내도, 자녀도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스마트폰만이 그를 위로하고 쉬게 하며 잠들게 하는 가족일 뿐이다. 이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는 ‘스마트폰 과부’가 됐다고 하소연한다. “우리 남편은 집에 오면 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아요. 잠들 때까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봐요!” 지방 근무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한 아버지는 격주 주말이면 집에 온다. 그런데 중학생, 고등학생 두 자녀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아빠 얼굴은 잠시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아이는 아빠도, 엄마도, 형제도 가족이 아니다. 오직 스마트폰만이 그의 가족이다.

 스마트폰 속 사이버 대중사회가 우리의 가족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면서 ‘함께 있지만 고독한 가족’이 되고 있다. 자신이 가족에게서 유리되고 고립돼 가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스마트폰은 대중사회보다 무섭고 잔인하다.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가족보다 재미와 즐거움만 주는 스마트폰이 자신에게 진짜 필요하고 유용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끄고 빼앗긴 가족을 되찾자

 가정의 달을 맞아, 스마트폰의 재미와 욕망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는 특별한 이벤트 시간을 가져보자. 가족을 빼앗아간 주범인 ‘텔레비전’을 단 하루만이라도 꺼보자. 더 용기를 내어 단 한 주라도 전원을 끄고, 보자기로 텔레비전을 씌우자. 스마트폰도 함께 끄자. 집에 들어오면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보관바구니에 넣어두자.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끄면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살아난다. 한 아빠의 증언이다. “한 주 동안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안절부절 서성이다가 아이 방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아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어 그냥 나왔습니다. 잠시 후 다시 아들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냥 뭐하는지 궁금해서 들어와 보았다고 말하고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한참 동안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나는데 아들이 ‘정말 오랜만에 아빠랑 이야기를 한 것 같네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끄면 가정에서 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일단 심심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책을 읽기 시작한다. 아빠는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 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집 안 형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집 안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도 한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놀이를 찾고,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자신의 장기를 자랑하기도 한 다. 결국에는 가족이 각자 혹은 함께 ‘별짓을 다한다.’ 이러한 가운데 대화가 많아진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존중과 배려의 관계가 자라기 시작한다. 5월 한 달만이 아니라 매월 정기적으로 기간을 정하여 “Turn off TV & Smartphone, Turn on Life & Family” 시간을 만들 필요를 느낀다면 대 성공이다.



미디어를 끄면 부모의 영향력이 살아난다

 미국 링컨 대학에서 5만여 명의 아이들에게 ‘아빠와 TV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를 물었다. 결과는 68% 아이들이 아빠 대신 TV를 선택했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기관에서는 아빠들에게 ‘자녀가 고민이 생긴다면 가장 먼저 당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50.8% 아빠가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실상은 아빠의 바람과 차이가 크다. 같은 질문을 자녀들에게 했을 때, 단 4%만이 아빠를 찾겠다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고민이 생겼을 때, 그것을 상담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4%에 해당하는 부모인가를 점검해보자. 내가 4%에 포함되는 부모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다. 지금 즉시 아이의 학교 친구 이름 다섯 명을 말해보라. 어렵지 않게 말한다면 당신은 4%에 포함되는 부모이다. 자녀 친구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자녀에게서 학교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만큼도 아이들에게 중요한 위치가 아니라는 것은 매우 속상한 일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대부분의 필요를 채워주고 걱정하고 돕는데도 정작 영향력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인 강호동 씨는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른바 ‘뽀통령 신드롬’을 확인했던 방송 인터뷰
이다.


2011년 4월 17일 방송된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에서
‘봄철 최고의 밥상’을 주제로 한 경남 남해편 방송 중


PD 강호동 씨는 집에서 두 살 아들하고 자신이 나온 프로그램을 자주 보시나요?
강호동  그 애는 지금 아빠고 뭐고 모릅니다. 뽀로로에 미쳐가지고... 상대가 안됩니다. 상대가 안돼요. 아빠가 나오는 프로그램 보자고 하면 혼납니다. 우리 가정에서 뽀로로는 대통령입니다. 방귀대장 뿡뿡이는 국무총리쯤 됩니다. 아들이 뽀로로 보고 있을 때, 아빠 나오는 것 보자고 다른 방송 틀면 난리가 납니다. 절대로 채널 고정입니다.

PD 진짜? 뽀통령, 뿡총리네요.

강호동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갔을 때,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떠들고 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니까 신경이 쓰이잖아요. 뽀로로로 다 정리합니다. 막 울며 보채다가도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눈에 딱 비춰주면 울음을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해서 스마트폰을 바라봅니다. 가끔 아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뽀로로에 빠져 있는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이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뽀로로를 볼 때, 부모는 특별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집중하고 있다고 기특하게 생각하며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을 차려 놓고 엄마가 아이를 불러보자. “이제 TV 끄고 와서 밥 먹자.” 아이는 “네.” 하고 벌떡 일어나 달려오지 않는다. 엄마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가 단지 ‘뽀로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음성을 무시하고 흘려듣는다. 몇 번 불러도 반응이 없으면 엄마는 아이에게 다가가 리모콘으로 TV를 끄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오늘은 TV 많이 봤으니까 이제 밥 먹자! 내일 또 보여줄게.” 그러면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뒤집어진다. 아이는 단지 TV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음성을 무시하고 거역한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부모 말의 영향력이 아이에게 미치지 않는다.

 10년이 지나 세 살이던 아이는 이제 13살이 됐다.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다. 엄마가 심부름 시킬 일이 생겨 아이를 부른다. 아이는 하던 게임을 멈추고 엄마에게 달려 나와 “엄마 저 부르셨어요?”하고 말할까?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게임만 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거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자녀에게 무엇을 시켜보라. 대답은 ‘응, 응’ 하지만, 엉덩이는 떼지 않는다. 그러면 엄마는 똑같은 말을 다섯 번, 여섯 번 반복한다. 다섯 번째 말할 때도 첫 번째 말할 때처럼 평상심을 가지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마 입에서 온갖 악한 말이 아이에게 쏟아져 나온다. 이러한 일상이 가정에서 빈번히,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교실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엄마의 이미지는 충격적이다. 한 친구는 무서운 이야기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는데, 내용은 ‘컴퓨터 하고 있는데, 거울 반대편에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이다. 요즘 초등학생에게 엄마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한 친구는 게임하다가 엄마에게 야단맞는 그림을 그렸는데, 엄마의 형상을 바퀴벌레로 표현했다. 엄마를 사나운 조폭으로 그린 아이도 있고, 심지어 엄마 목을 칼로 참수하는 그림을 그린 아이도 있다. 엄마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아이들의 마음 안에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사랑과 신뢰, 존중과 배려의 관계가 살아있는 가족 만들기

 ‘사랑과 신뢰, 존중과 배려!’ 이것이 우리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의 핵심 가치로 살아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배려하며, 자녀는 부모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좋은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부모의 영향력이 자녀에게 머무르려면 가정에 이 네 가지 핵심가치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 키우기 힘들다고 말한다. 

 학교 선생님들도 힘들다. 가정에서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아이가 어떻게 교실에서 선생님을 존중하고 순종하겠는가? 아이들이 교실에는 앉아 있지만, 선생님의 영향력 밖에서 살고 있다. 교실에서 선생님을 바라보며 집중해 듣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선생님의 말씀을 집중해 듣는다는 것은 선생님의 모든 좋은 것이 학생에게로 흘러간다는 의미이다. 수도관에서는 물이 흐르고, 송유관에서는 석유가 흐르는 것처럼 어른세대의 좋은 것들은 자녀세대와의 좋은 관계라는 통로를 통해 흘러간다. 이것을 ‘관계의 법칙’이라고
한다. 관계의 법칙은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의 마음을 끌어오는 능력’이다. 요즘 교실에서 이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오는 능력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좋은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데 부모의 자리를 TV, 컴퓨터, 스마트폰이 차지하면서 부모와 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영어나 수학은 잘하지만, 정작 선생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자녀의 공부에만 목숨을 건다. ‘내가 너와 원수가 되는 한이 있어도 영어는 반드시 잘하게 만들겠다’는 식의 결기를 가지고 자녀와 싸우는 부모가 너무 많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하는 것이 영어’이다. 성공은 그런 것에서 오지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권위적 관계인 부모, 그다음 단계에서 만나는 선생님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아이들이 결국 성공한다.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사랑과 신뢰, 존중과 배려’의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자녀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DNA이다. 따라서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이 방해가 된다면 당연히 제거해야 한다. 가능하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치우기를 권한다.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는 부모의 소리 이외에 어떤 소리도 아이들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라. 그러면 부모의 음성을 듣고 부모를 존중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가족의 영향력을 키우는 미디어 사용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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