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글선생의 글쓰기 비밀수업 - 아이들은 12년간 독자 없는 글을 쓰는 무명작가 (2020년 11월호)

한우리
2020-10-28
조회수 320



독자 없는 무명작가

 글쓰기 지도에서 대부분의 어른은 아이의 글에서 문제점을 찾고 고치는 데 집중합니다. 고칠 부분이 줄어들면 실력이 늘었다고 판단하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저 역시 성인 대상 수업에서는 절반 이상을 고쳐쓰기에 할애하니까요. 잘 쓰는 법을 다루는 글쓰기 책도 자세히 보면 대부

분 고쳐 쓰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은 결국 잘 고친 글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아이들에게도 통할까요? 더 좋은 글로 고치려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쉽게 말해 아이에게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가 별

로 없습니다. 더 간결한 문장, 정확한 어휘, 논리적 구성,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 흐름 등을 이야기 해도 아이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지

식이나 경험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대개 ‘그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독자 없는 글을 최소 12년이나 써야 하는 무명작가입니다. 재미가 하나도 없고 여정도 깁니다. 엄마 아빠가 지우개를 든 편집장이라

면 아이가 좋아할 리 없겠죠. 글쓰기에 알레르기가 생기는 건 물론 부모와의 관계도 멀어질 수 있습니다. 공감이 먼저라고 했잖아요? 평가자

의 시선은 잠시 거두고 먼저 독자가 되어 주세요. 독자의 자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를 글쓰기 선수로 만드는 독자의 자격

 우선 눈높이가 낮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낮추길 추천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소비하는 글은 수많은 교정교열을 거칩니다. 오탈자가 

없는 건 물론이고 글의 구성도 괜찮지요. 인기작가의 글이라면 재미도 있을 겁니다. 책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유통되는 글, 어른이 읽는 글의 대

부분은 어른이 썼습니다. 우리가 글은 못 쓸지라도 읽는 글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말이에요. 그러다가 아이의 글을 보면 답답하기 이

를 데 없습니다. 엉터리로만 보여요. 아무리 봐도 대충 쓴 거 같거든요. 지도한 기간이 축적될수록 실망이 커집니다. 알려주는 대로 개선되지 않

습니다. 답은 분명해요.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기대가 낮으면 실망하는 법도 없고 감정이 상하지도 않거든요.

 다음으로는 첫 반응이 뜨거워야 합니다. 이건 센스나 재치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음~ 잘 썼는데. 오, 이 부분은 재밌네. 이야~ 어떻게 이런 걸 상

상해냈지! 이 표현은 정말 근사하다!’라는 반응을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글에 관한 구체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면 아이의 표정을 꼭 살피세

요. 충분히 마음을 나눈 뒤 내용과 형식을 다듬어줘야 합니다.


부모의 반응이 아이를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른이 이와는 반대로 글을 대합니다. 일단 지적하고 고친 다음 ‘나쁘지만은 않아, 읽어보니 글은 괜찮아’ 등의 칭찬을 합니

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습니다. 아이의 일기장을 펼쳤을 때 처음으로 보이는 반응이 한숨이고 연이어 ‘지우개 가져와’를 외친다면 아이들

은 고립될 수밖에 없는 거죠.

 눈높이를 낮추세요. 어른부터 숨 쉴 여유가 생깁니다. 아이의 글에서 부족한 점보다 잘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어요. 또 

호의적인 첫 반응을 보여주세요. 아이들이 주눅 들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면 어떤 글에도 에너지를 심을 수 있어요.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

면 아이 스스로 잘 쓰는 법을 깨우치게 됩니다.


도깨비가 아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욕심이 나고 기대하게 됩니다. 잘 따라주길 바라고 엄마 아빠의 기분도 헤아려줬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이해력이 빨랐으면 하죠. 그러나 어디 그런가요! 아들은 저와 함께 4년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글쓰기 한 지 4년이 되

었는데 왜 글이 그대로냐”고 할 땐 저도 욕심이 생기고 아이를 다그치고 맙니다. 저도 모르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밀어 넣습

니다.

 글쓰기에 일정 시간을 투입했을 때 그만큼의 분량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쓰는 글마다 만족스럽다면 저 역시 소원이 없겠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다면 누구나 작가가 되겠죠. 내 아이일수록 욕심을 버리고 다양한 변수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해요. 아이들은 도깨비가 아닙니다. 글 나와라 뚝딱 한다고 글이 나오지 않아요. 눈높이를 낮추고 긍정적인 첫 반응을 지속해보세요. 어느 

순간 기가 막힌 글을 하나둘 써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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